박영규씨가 쓴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년)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1대 태조실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망국의 황제였던 순종의 제27대 순종실록까지의 이야기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년)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 율곡 이이와 동갑이었던 그는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경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전해집니다. 무엇보다 그는 상대의 탄핵으로 인해 향촌에 은거할 때에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을 창작했습니다.
정조 당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에 대한 이야기에 있어서도 저자는 다산의 삶을 3기로 구분합니다. 곧 제1기는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시기와, 제2기는 권력의 세계에서 밀려나 귀양살이하던 시기와, 제3기는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던 시기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유배지에 도착한 후 오직 독서와 창작에 몰입합니다. 그는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목민관의 부정 부패를 경계하는 「목민심서」, 공정한 형벌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흠흠심서」, 치도의 방책을 제지하고 있는 「경세유표」등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특히 위민(爲民) 사상의 정수를 보여주는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베트남의 호치민이 가장 애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목민(牧民)이란 말은 백성을 살찌운다는 것인데, 목민관들이 백성을 살찌우기보다 백성은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는데, 권력을 가진 그들은 자신만 살찌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산(多産)은 “군자의 학(學)은 수신(修身)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박영규 씨는 조선시대 유배지는 학문과 문학의 산실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통하고 평강한 때보다 고난 당한 때가 오히려 유익이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당하는 고난의 때란 어렵고 힘들지만 사람을 성숙시키고 삶을 직시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고난의 과정을 겪은 분들이었습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민족적 차원에서도 고난 가운데 단련되고 쓰임 받은 민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고난의 하이라이트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잔, 고난의 잔을 주님께서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신 유익은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어떠한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모두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