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6)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 1841~1931)은 그의 책  ⌜군중심리⌟(La psychologie des foules)에서 “군중의 사상, 추론, 상상력”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곧 사상은 그 시대에 영향을 받는 일시적 사상과, 환경과 유전과 평판으로 안정성이 부여된 기본적 사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군중의 사상은 군중이 이해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갖출 때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순한 형태를 띠어야 군중이 그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철저한 변화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상이 아무리 위대하거나 진실하다 해도 군중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사상을 위대가호 고상하게 만드는 요소들 대부분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어떤 사상이 다양한 과정을 거쳐 군중의 정신에 스며들면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고 연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상이 군중의 정신에 뿌리를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사상에서 벗어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군중의 추론에 있어서는 외적으로 유사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것들을 짝짓고 특수한 사례를 성급히 일반화하는 경향은 군중의 추론 방식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군중은 논리적인 증명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강요된 판단만 받아들일 뿐이고 토론을 거쳐 서 채택된 판단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군중의 상상력에 있어서는 추론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렇듯 군중의 상상력도 무척 활발하고 격정적이며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군중은 부수적인 해석이 필요 없는 이미지만으로 감동을 받는데, 연극 공연이 항상 군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곧 연극만큼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군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줄 안다면 군중을 지배하는 법을 터득한 것과 진배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예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 히틀러와 그의 입(별명이 지옥의 입)으로 불렸던 괴벨스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우리는 군중에 대해 성경을 통해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군중이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성경 광야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군중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한 군중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 무리가 있습니다.

군중의 특징에 대해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그 실체가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한 예로 그들은 언제나 전염성이 대단히 강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서 얻으면 되는데, 그들은 정탐군을 보내자고 했습니다. 정탐군을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신 1:20-23).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그 땅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정탐군을 보내자고 해서 열 둘을 택해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정탐군의 보고 가운데 열 명의 정탐군이 부정적 보고를 함으로 이스라엘 전체에 난리가 난 것입니다. 곧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민 14:1-4)

열 명의 정탐군의 부정적 보고로 인해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밤새도록 곡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들 이스라엘 군중은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목도하고,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하늘양식인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함으로 받고 있는 군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저 부정적 보고를 듣고 이런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군중심리를 상당히 유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언제나 다수의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만용

2024-03-08T01:10: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