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알기에 좋은 때입니다[2020.09.20]

코로나 19로 인해 요즘은 어느 곳을 찾아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증상까지 호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나름대로 주어진 개인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찾고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 41장에 “최상의 선비가 도(道)에 대해 들으면 부지런히 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문은 “상사문도 근이행지”(上士聞道 勤而行之)“로 되어 있습니다.

공자(孔子) 역시 「논어」(論語) 리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원문은 “자왈 ‘조문도 석사가의”(子曰 ’朝聞道 夕死可矣‘)로 되어 있습니다.

노자(老子)가 추구하는 도(道)와 공자(孔子)가 추구하는 도(道)가 차이점이 있으나, 우리는 성도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도(道)를 적용해보면 됩니다. 곧 우리는 그 도(道)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을 읽고 배우고 알아 실천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노자나 공자는 도(道)를 일단 듣고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일치합니다. 곧 도(道)가 무엇인지 모르면 그 도(道)를 따라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단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덮어 놓고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읽고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옮기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날을 위해 철저하게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6: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준비하고 그 후에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쳤습니다(느 8장).

수문앞 성경강좌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느 8: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인도 하에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한 후 이스라엘은 에스라를 특별 강사로 모시고 수문앞 성경통독사경회를 실시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도(道)를 듣고 깨달은 그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이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곧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느 8:13-1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배우고 깨닫기 위해 에스라가 있는 곳으로 다시 모인 것입니다.

노자(老子)의 표현에 의하면 도(道, 하나님의 말씀)를 듣고 이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 이들은 부지런히 행한 것입니다. 공자(孔子)의 표현에 의하면 아침에 도(道)를 듣고 제대로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모인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적어도 이러해야 합니다. 아니, 이러한 자세를 넘어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보편적 진리마저 왜곡되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나가는 것을 넘어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이 세상의 삶 이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히 9:27). 이에 영원한 세계를 위해 유한한 이 세상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도(道)를 부지런히 듣고 배우되, 생명의 도(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우고 행하는데 전심전력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만용

2020-10-09T23:06:2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