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규(無所不闚)[2020.09.27]

사마천(B.C.145년(?)~90년(?))의 「사기열전」(노자한비열전)에 장자(莊子, B.C369~289)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마천은 장자(莊子)의 이름은 주(周)이며, 그는 몽현의 칠원(漆園)에서 벼슬을 했으며, 양 혜왕(梁 惠王), 제 선왕(齊 宣王)과 동시대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학문에 대해 무소불규(無所不闚), 곧 직역하면 “들여다보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하면서 그의 학문과 지식의 범위가 넓어 통하지 않음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장자의 사상의 요체는 근본적으로 노자(老子)의 학설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장자의 학문 범위가 너무 넓어서인지 그의 「장자」(莊子)는 대략 10만 여자로 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우화들입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거나 황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자는 우화를 통해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莊子)만 아니라 역사에 탁월한 인물들은 대체로 학문에 도통(道通)한 인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송왕조의 문호로 길이 칭송받고 있는 소식(蘇軾, 1036~1101년, 호는 동파(東波)은 “독서만권시통신”(讀書萬卷始通神)이라고 했습니다. 곧 “책을 만권 읽으면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말입니다. 물론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그만큼 도(道)를 통(通)할 수 있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탁월한 인물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동서고금의 학문에 통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문이 아니면 나름대로의 분명한 철학과 직관력과 판단력 그리고 결단력을 가진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동서양 인문학을 공부해 보면 실제적으로 반드시 공부해야 할 책은 대략 100여권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살펴보면 대략 3년 정도 공부하면 나름 살펴 볼 수 있는 분량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문학(人文學)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문학이 인생의 모든 문제와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해보니 그러한 한계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어떤 주장들을 펼치고 있지만 궁극적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차원에만 그치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 3:11). 인간은 영적 존재요 종교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진정한 평안이나 기쁨이나 사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분명 유익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문학 차원에서만 머무르면 인간학(人間學) 수준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성경은 구원과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게 유익한 말씀이라“(딤후 3:15-17)고 합니다.

구원과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한 말씀, 나아가 영생을 어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기에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무소불규(無所不闚) 하지 못해도 성경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믿고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만용

2020-10-09T23:05:3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