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후량의 장군이었던 왕언장(王彦章, 863년~923년)이 있습니다. 그는 후량의 북방의 강적이었던 후당(後唐)과의 최후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어 포로가 됩니다. 그때 후당 장종(藏宗) 이존욱이 왕언장에게 귀순을 권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표범은 죽어서 아름다운 가죽을 남기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름을 가벼이 여겨서야 쓰겠는가. 나는 떳떳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겠노라.”고 하면서 귀순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그는 처형되었는데, 그가 한 이야기인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말이 일본에 건너가 “인사유명 호사유피(豹死留皮 虎死留皮)”가 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휴대폰을 남긴다”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무리 하는가? 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을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궁극적 가치를 두지 않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가치에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요 14:1-6) 하늘나라를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에 당연히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전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어렵고 힘든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편안하고 아무 부족함이 없을 때 복음이 활발하게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의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눈물 흘리던 시대에 복음이 더 열심히 그리고 풍성하게 전해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로마황제 10대 박해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지하에서 오랜 기간 살았을 때 후에 엄청난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로마를 뒤집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설적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시대, 절망과 좌절로 인해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는 이 때에 바로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전도지 한 장, 복음메시지 한 줄, 사랑과 섬김의 수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해줌으로 택한 백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고 말씀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복음 전도에 힘씀으로 모두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복음 전도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린 하나님의 일군이었다는 사실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