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2년 1개월 만에 며칠 전 이 모든 조치가 전면 해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마스크 착용은 해제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년여 안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인해 식당, 카페, 대학가 등 여러 부분에 있어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상의 회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역시 코로나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며 일상의 회복을 준비하고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상의 회복 이전에 코로나 펜데믹이 우리 신앙생활과 교회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원래 알곡과 가라지는 타작할 때와 바람이 불 때 구분이 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실 주님에 대해 증거하기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 3:17)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인생의 고난이 임할 때입니다. 시련과 고난의 바람이 불 때 알곡과 가라지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년여 간의 코로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믿음을 약간 시험해 본 기간이 아니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약간 시험해 본 기간이었다”는 것은 지난 기독교 2천여년 역사를 뒤돌아보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박해의 대표적 기간이 로마황제 네로 때부터 시작된 로마황제 박해 10대 기간이었습니다. 근 250여년간의 기간이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오랜 기간 동안 로마는 기독교를 진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가 로마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세상의 논리나 주장이나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역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은 세상의 권세나 힘을 가지고 핍박하면 교회가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공격하면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배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참신앙인은 배도 대신 순교로 그 길을 대신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교회는 정화의 과정을 다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펜데믹 2년여 기간 동안 숫적으로는 줄어든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진리는 수(數)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곧 지난 2년여 시간은 어떤 면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정화의 과정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대환란을 예비시키는 훈련이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약하게 교회를 향해 다가왔던 어설픈 불편함의 잣대가 우리의 신앙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과 가장 힘든 시간은 아직 오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힘든 시간을 통과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