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민 교수가 쓴 「미쳐야 미친다」(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푸른역사, 2004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불광불급”(不狂不及), 곧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세상사 모든 분야에서 몰입한 사람들이 어떠한 일이든 해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지식인들 가운데 허균, 권필,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광기와 열정이 어떠했는가와 결과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인물들 가운데 규장각에서 많은 서적을 정리하고 교감하고 또한 많은 저서를 남긴 이덕무(李德懋, 1741~1793년)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덕무는 독실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난방이 되지 않는 추운 겨울에도 공부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열손가락이 동상에 걸렸는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풍열로 눈병이 나서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에서도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고, 그는 마치 무엇에 기갈 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해서 읽은 책이 수만 권이 되었고, 아주 작은 글씨로 베껴 쓴 책만도 수백 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간서치전”(看書癡傳)이라는 것을 썼는데, ‘간서치’(看書癡)란 ‘책만 읽는 바보’란 뜻입니다. 그는 그 자신의 말대로 책만 읽는 바보였습니다. 그야말로 책에 미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몰입해야 결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기자는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 119:1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사모해서 기갈 들린 사람처럼 입을 열고 헐떡였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이러한 자세는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 119:147 -148)라고 하는 데까지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야경(夜更)이 깊기 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기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몰입한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편 119편 기자(저자)를 에스라로 보고 있는데,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랍비 중의 랍비인 랍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몰입했던 에스라는 그 말씀을 알고자 했고 연구했고, 이것을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으며(스 7:10), 그대로 가르친 것입니다(느 8장).
하나님의 사람 바울 역시 불광불급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고 말씀합니다. 그는 결박과 환난이 있다고 해도 주님께로부터 받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위해 끝까지 나아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명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나름대로 일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을 하고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보다 더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시간만 흘려 보낸다고 잘 산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의미 없이 산 인생은 후회막급으로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있어야 더 의미가 있게 보실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많은 사람들이 돈, 명예, 권력, 쾌락, 우상 등에 몰입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성도는 무엇에?, 무엇을 위해? 불광불급(不狂不及)할 것인가 고민하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날 수(數)는 그리 길지 않음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