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친구목사님들과 함께 공부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요즘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인간사고의 극한점과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고전에서 그 깊이가 대단히 깊은 책 가운데 하나가 ⌜도덕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덕경⌟에 참으로 생각하게 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제8장에 그 유명한 “상선약수” (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최상의 선(善)은 물의 작용과 같다”는 뜻입니다. 여기 ‘상선’(上善)은 선악(善惡) 개념에서의 선(善)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약’(若)은 ‘마치 ~와 같다’란 뜻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에 연이어 나오는 말은 “수선리만물(水善利萬物), 이부쟁(而不爭), 처중인지소악(處衆人之所惡)”입니다. 그 뜻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아니하며,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란 말입니다. 나아가 노자(老子)는 물은 도(道)에 가깝다(故幾於道, 고기어도)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道)에 가까운 물을 본받아야 하는데, 이는 다투지 않음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달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사도 바울의 권면과도 같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롬 12:21).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3-4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성령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따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갈 5:16).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순교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곧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6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할 때 우리 주님을 따라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주님을 본받는 사람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자세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곧 다투지 아니함을 넘어 상대를 포용하며 감화시키며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각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과 자세를 넘어 원수사랑에까지 이르는 역사를 함께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생명의 복음이 널리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