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리 [2018. 9. 2]

지난 23일(목)에 시찰 목사장로 부부수련회를 강릉쪽으로 다녀왔습니다. 강릉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박물관” 및 “손성목 영화 라디오 TV뮤직박스 박물관”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상당히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에디슨이 처음 발명한 축음기를 비롯하여 각종 발명품, 곧 뮤직 박스, TV. 다리미, 냉장고, 전구 등 아주 많은 발명품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 박물관”의 마지막 코스에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이번에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손성목 영화 라디오 TV뮤직박스 박물관”의 마지막 코스에는 찰리 채플린이 등장하는 무성영화와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듣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고 듣는 것이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1-3).

사도 베드로와 요한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라고 했습니다. 다른 주님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께로부터 들은 생명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보고 들음으로 결정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빌라도는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넘겨준 인물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관련되어 그의 아내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 자기 내면의 양심의 소리, 특히 예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고 무리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성경은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 23:20-2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함으로 가장 비참하고도 저주받은 이름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배움으로 늘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만용

2018-09-04T17:31:3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