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

1831년 10월 15일 아버지 에드워드 버드(Edward Bird)목사와 어머니 도라(Dora Edward) 사이에서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보로브리지(Boroughbridge)에서 태어난 여행가요 작가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031~1904)여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병약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라틴어와 식물학을 배웠으며, 어머니로부터 프랑스어, 성경, 문학, 역사 회화 등을 공부했습니다. 병약했던 그녀에게 의사가 장기여행을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세계를 돌아다니게 되었으면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곧 그녀는  「미국에 온 영국 여인」(Englishwoman in America, 1856), 「하와이 군도」(The Hawaiian Archipelago, 1875), 「일본의 오지」(Unbeaten Tracks in Japan, 1880) 등을 썼습니다. 나아가 1895년 1월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1894년 2월에 조선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그 후 1897년 3월까지 네 차례에 걸친 방문을 통하여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를 집필했습니다. 첫 번 조선 방문 때 그녀의 나이 63세였습니다. 네 차례에 걸친 조선 방문 이후 그녀는 중국으로 건너가 여행을 한 후 「양자강 너머」(The Yangtse Vally and Beyond, 1899)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1901년 모로코 여행 후 1904년 10월 7일 68세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비숍 여사가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보면 당시 열강들에게는 은둔의 나라로 알려져 있던 조선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세밀한 필치를 통해 조선이 산하(山河)와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모습 등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읽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숍 여사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 안에서의 조선 사람들은 나태하고 빈둥거리고 일하지도 않고, 일에 대한 의욕조차도 없으며, 여자들은 그저 한낱 종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그녀가 러시아와 만주로 이주한 조선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조선 사람들의 기질이 게으르다고 평가했던 자신이 잘못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조선에서 게으름과 나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치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곧 그녀가 본 조선은 두 계급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착취하는 계급는 흡혈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양반 계층으로 형성된 관리들이며, 착취당하는 계급은 조선 인구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녀 눈에 비친 조선은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된 상태이다. 성공적 경작을 위한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며,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을 매장하고 있다. 1,740마일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어장은 국부의 원천일 것이다. 조선에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천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자신들보다 나은 형편에 있는 친구나 친척에 의존해 살아가는 관습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가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 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 군주의 권력은 엄중하고도 영원한 헌법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숍 여사는 이러한 글을 남기면서 처음 조선에 가졌던 혐오감이 점차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쉽다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해 보면 “에벤에셀”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일인데, 그저 에벤에셀의 역사가 지속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이만용

2024-07-07T22:08:4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