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을 깨닫느뇨?[2019. 6. 9]

임진왜란 연구의 중요한 자료인 「징비록 懲毖錄」을 비롯하여 여러권의 책을 집필했던 조선 시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년)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도 상당히 깊은 인물입니다.

그가 쓴 문집 가운데 「서애집」(西厓集)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학이사위주”(學以思爲主), 곧 공부를 할 때 생각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 나옵니다. 성현의 공부는 그 중심에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성룡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최고의 보물이 ‘생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곧 “어떤 사람은 다섯 수레의 책을 줄줄 외우면서도 정작 글의 뜻과 의미를 물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한다(思)는 말은 밭 전(田)+마음 심(心)으로 되어 있는데, 농부가 밭을 갈아 잡초를 없애고 좋은 곡식을 얻는 것처럼 공부하는 사람도 마음 밭을 잘 갈아 다스려야 그 마음이 바르게 되고 뜻이 성실해지며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공부, 특히 독서를 통해 읽거나 배운 내용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 그것은 시간 낭비한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에도 동일한 이치가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이었던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가 읽기는 읽었지만 깨닫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빌립을 보내셔서 내시가 병거 위에서 읽고 있던 이사야 53:7-8 말씀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빌립은 내시에게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물었습니다(행 8:30). 이에 내시는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은 읽을 때 읽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되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읽었다는 것으로만 만족하면 곤란합니다. 나아가 성경을 암송함으로써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성경을 외우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빌라도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행 13:27-30, 눅 23:20-25 등).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만 읽는 차원에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다독(聖經多讀)이 영적 교만의 재료가 되면 곤란합니다. 성경을 대할 때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물었던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는 물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가운데 깨달음을 통해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져가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무더위가 더해간다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고 앉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읽는 것을 잘 깨달아 앎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만용

2019-06-16T20:54:24+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