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자세를 새롭게[2018.11.18]

역사 평론가 한정주 씨가 쓴 「글쓰기 동서대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동양과 서양에서 글쓰기 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뽑아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2장 소품의 글쓰기 부분에서 일본의 문화와 미학을 거론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벚꽃, 불교, 하이쿠, 사무라이 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적인 점은 무상(無常)이라고 합니다.

벚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만개(滿開)할 때가 아니라 꽃이 떨어지는 ‘한 순간’이며, 불교는 인간의 삶을 찰나의 시간이며 무상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이쿠는 순간과 찰나를 읊은 시(詩)이며, 사무라이에게 있어 최고의 미덕과 숭고한 가치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죽음의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미학이 악용된 경우가 가미가제 자살특공대의 경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상(無常)은 무신론적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에 해당됩니다. 솔로몬의 인생론인 유신론적 허무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와 미학과 풍속이 허무하다는 것을 아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허무하지 않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각 나라나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문화와 미학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살펴보면 그 민족의 정서와 사상과 기질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민족의 문화와 미학이건 간에 이것을 넘어 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 가운데 복음이 증거된 나라나 민족에게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문화가 변화되고 정신세계가 바뀌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된 곳에는 당연히 그 문화와 미학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변화를 위해 애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화변혁에 대한 노력이나 결과가 없으면 오히려 그 문화에 몰입되고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를 다른 말로 하면 풍속(風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8:3-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고 세상 문화, 풍속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을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도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사 2: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주의, 황금만능주의, 물질주의, 신비주의, 퇴폐 향락주의 등의 문화와 물결에 휩쓸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남의 생명을 해하고,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 버리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살을 미화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세지말의 징조가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딤후 3:1-7). 이러한 때에 성도는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시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결단적인 신앙생활과 자세가 필요합니다(수 24:15, 마 6:33, 왕상 18:21 등). 성도는 세상에 동화되어 세상의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삶을 통해 시대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거룩한 백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만용

2018-11-15T23:13:43+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