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는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하셨습니다(「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이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인(仁)한 이가 드물다”는 뜻입니다. 여기 ‘교’(巧)는 ‘교묘하다’라는 뜻이며, ‘영’(令)은 ‘아름답다, 좋게 하다’란 뜻이며, ‘선’(鮮)은 ‘곱다, 뚜렷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자의 핵심 사상은 인(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仁)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仁)을 때로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예(禮의)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만한 관계로 인(仁 )을 정의하기도 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곧 위선과 위장을 통해 사람을 속이고자하는 자들이 인(仁)하지 않은 이유는 상대를 향해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상대를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이 없는 행동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고 하십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 구약율법의 핵심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가르침과 공자의 가르침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탁월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충분히 참고하고 도움을 주는 가르침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공자만이 아니라 인문고전의 많은 사상과 가르침 역시 그러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살펴보고 배우면 우리 삶이 좋은 지침이 되는 것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있는 말씀은 우리의 실생활에도 얼마든지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언영색’하는 자들 중에는 사기군들이 주로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 그러했습니다(고후 11장).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렘 17:10, 렘 20:!2). 이에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잠 4:23).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기면 우주미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마음이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역사가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되 특별히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거짓과 위선과 미혹과 위협과 핍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지게 하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벧전 5:8-9, 요 8:44). 특히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해 더욱 그러합니다. 이에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분별력을 가지고 살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