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학교를 다닐 때 의미 있게 읽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흔히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리웁니다. 「명상록」은 그가 전쟁터에서 자기 생각을 틈틈이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당시 로마가 이탈리아의 로마가 제국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도시였다면, 그리스의 아테네는 지성(知性)의 중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테네는 스토아 철학이 꽃을 활짝 피우던 시기였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에 심취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당대 최고 학자이자 부자요 교양인이었던 헤로디아스 아티쿠스가 영접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당시 아테네 철학 학부를 플라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스토아 철학, 그 밖의 철학을 가르치는 네 개로 구분했습니다. 철학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역사상 가장 고결한 황제요 명군으로 추앙받지만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핍박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테베레 강이 범람하고, 역병과 파르티아와의 전쟁 및 다른 전쟁들이 있었는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제국을 단합하기 위해 올림푸스 신들에게 제의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순종하지 않자, 핍박을 가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처형되었는데, 특히 리옹에서 박해가 심했는데, 혐의는 식인, 근친상간, 오이디푸스식 결혼등의 죄목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고문, 매질, 수욕을 당했으며, 짐승들의 밥이 되어 순교했습니다. 속주 총독이나 황제를 향한 기독교인들의 호소는 무시되었습니다.
세상적 기준이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볼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탁월한 황제요 명군이며 뛰어난 철학자일지 모르나 기독교인 입자에서 볼 때는 핍박자였던 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해 봅니다. 스토아철학에 심취해 있으며, 자기절제에 강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황제였던 그였지만 그도 역시 한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는 「명상록」에서 자신의 영혼은 언제든 육체로부터 용감하게 이탈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처럼 생각없는 반사작용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철학자답게 담담하고도 품위 있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육체로부터의 영혼이 분리(이탈)되는, 곧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과 자세가 철학자다운 면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후(死後)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의 사고(思考) 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기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왜 죽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 어떤 세계가 있는가? 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진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고 말씀합니다.
죽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며, 죽음 이후에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유황 불못(둘째 사망,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 속에 철학은 조그마한 위안을 줍니다. 그런데 이 차원에만 머무르면 안됩니다. 철학을 넘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