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제16편 “계씨”(季氏)편에 공자께서 벗(친구)에 대해 말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자는 유익한 벗 셋과 해로운 벗 셋이 있다고 하면서, 유익한 벗 셋은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면 해로운 벗은 위선적인 사람, 아첨 잘하는 사람, 말만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대한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공자왈, 익자삼우, 손자삼우, 우직, 우량, 우다문, 익의, 우편벽, 우선의 우편녕, 손의.)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소 다르겠지만 그 다음은 부모자식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다음이 형제자매와 일가친척 등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와의 관계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주님 안에서 성도들 서로 간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 관계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인해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대로 유익한 친구(벗)가 있는가 하면 해로운 친구(벗)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며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변치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이며 유익한 벗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나의 친구”(벗)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1:8).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시기 전에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창 18:17-33).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3-15)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만 친구로 삼아주신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건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처럼 여기시고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친구 되셔서 그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데, 영원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롬 8:31-39). 주님의 사랑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끊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사랑인 것입니다(렘 31:3, 요 3:16, 요일 4:8-16, 롬 5:8).
2020년 12월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코로나전염병으로 인해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는 일을 등한시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요 1:14, 빌 2:5-11)을 기리는 성탄은 진정한 친구 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영원한 친구 되신 주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인 것입니다.
두 주 정도 남은 성탄절을 생각하고 이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며 새로운 해를 계획해야 하는 이 시점에 영원한 친구 되신 우리 주님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께서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이 놀랍고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