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를 공부하면서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은 그들이 대단히 현실적 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어떤 상황에 대해 냉철하게 대체하는 능력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인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부터 트라야누스 황제까지 국가를 통치할 때 늘상 문제가 된 것이 동방 속주와 접해 있던 파르티아 문제였습니다. 이 파르티아 문제는 아르메니아와 언제나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예루살렘을 공략하러 가기 전 로마는 아르메니아가 로마와 맺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준수해 달라고 했습니다. 파르티아를 향해서도 이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이에 두 나라는 로마의 요구를 흔쾌히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지도자들은 상호불가침 조약이나 평화조약을 맺을 때에도 상대의 선의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을 그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곧 로마가 유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르메니아나 파르티아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긴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군사력을 그들과의 국경에 배치해 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평화조약 문서 같은 것은 하나의 종이조각에 불과한 예가 많았습니다. 결국 국제사회 국가간 관계는 힘이 논리가 항상 이면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 나라와 평화조약을 맺은 후에 망한 나라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늘 직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로마군은 영웅을 필요료 하지 않은 조직의 힘이 작용한 대표적 경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군 자체가 현실을 중시여겨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으며, 장군들 역시 어떤 영웅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적과 싸울 때에 가능하면 가급적 대군을 투입하여 희생을 줄이는 방법을 서슴없이 택하기도 했습니다. 로마군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과 장기전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 나라도 쉽게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로마군의 훈련과 체계와 그들이 치르는 전투를 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뒤돌아 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곧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0-17)
로마가 세계를 제패하고 다스리던 시대를 살았던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 로마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면을 생각하면서 바울은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어떤 무장을 갖추고 싸워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군은 전쟁에 임할 때 전신갑주를 갖추고 방패와 창과 칼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우리 역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의 권면을 꼭 기억하면서 갖추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처한 영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함으로 날마다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