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하여 [2018. 8. 19]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사마천(司馬遷)이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서신 「보임안서」(補任安書)에 나오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의 “사마천전” 및 “문선”(文選) 권 41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人固有一死(인고유일사)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데
或重於泰山(혹중어태산) 그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운 것도 있으며
或輕於鴻毛(혹경어홍모)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 것도 있으니
用之所趨異也(용지소추이야)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사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울러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고 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행 9:5)라는 물음과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라고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라는 물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물음이며,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물음은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곧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난 바울은 완전히 변화되었으며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생명을 얻은 후 반드시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과연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명의 발견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영적으로 대단히 혼탁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명의 재발견이 필요합니다. 흔히 생각하듯 사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사명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삶뿐 아니라 죽음 역시 의미 있게 맞이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시편 기자의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생명 얻은 성도로서 사명을 늘 기억하며 승리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용

2018-08-26T20:46:05+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