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도(道)[2019. 5. 19]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곧 “추구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자왈, 도부동, 불상위모)로 되어 있습니다. 공자의 이러한 말씀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가운데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느 시대나 적용될 수 있는 말씀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추구하는 도(道)는 진리입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이러한 일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요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성도의 모임과 모습은 대단히 귀한 일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저를 아는 지식은 영생에 이르는 지식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 온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은 성도의 공통된 목표이어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공통적으로 함께 추구해 나가는 거룩한 사명, 하나님 나라, 영생에 이르는 지식, 진리 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반면 이를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없는 것도 역시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듯, 하나님과 우상이 함께 일치 될 수 없듯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와 영원한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함으로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고후 6:14-16).

이러한 일에는 일가 친척이나 심지어 가족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 지나고 나면 영원한 세계에서는 각기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마 10:34-38, 요 3:16-19).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이 땅에서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추구하는 도(道)가 같다는 것은 정말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도(道)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과 달리 우리 기독교에 적용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고 배우고 제대로 앎으로 실천하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교회는 영원히 복되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추구하는 도(道)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른 방향, 다른 결과, 다른 열매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지만 낮에는 더위가 이제 서서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오기 전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우리 교회가 함께 추구하는 도(道), 곧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배우고 통달하고 삶에 실천하기를 원하는 일에 전심전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용

2019-06-16T20:49:0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