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 공자께서 시(詩)에 대해 제자들에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자는 제자들이 왜 시(詩)를 공부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곧 시(詩)를 배우게 되면 감흥(感興)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사물을 잘 볼 수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으며,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노(怒)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까이는 어버이를 잘 섬길 수 있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고 나무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음악과 시(詩)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과 시는 인간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 인간은 지정의(知情意)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언어나 흘러나오는 동작 등을 통해 표현합니다. 그것을 표현하되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정을 지닌 인간은 그것을 속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시(詩)를 쓰는 것입니다. 나아가 시(詩)를 쓰는 것만으로는 더 부족하기에 곡(曲)을 붙여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좋은 시(詩) 한편은 개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대단한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특별히 민족의 정신을 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많은 시인들이 쓰고 남긴 시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시가 많이 나옵니다. 시편 같은 경우는 그 제목 자체가 시를 모아 둔 것으로 시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대표적인 시인은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인이요, 음악가요, 목동이요, 장군이요, 정치가요 왕이었습니다.
시편을 지금 새벽말씀묵상에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의 분량에 따라 짧게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좀 더 길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편 말씀은 한 번 듣고 흘려보내기보다는 다시 되새기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반복하는 것이 은혜가 됩니다. 나아가 아예 암송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시편 말씀을 암송하면 그 말씀이 나의 심비(心碑)에 새겨지게 됩니다.
얼마전 극동방송을 듣던 중 아주 멋진 문장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대학 시절 시험을 보는데, 시험문제가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런은 혼자 아무것도 적지 않고 있다가 교수가 한 줄도 쓰지 않으면 F학점을 받는다고 하자, 한 문장을 기록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가 기록한 한 문장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붉은 빛을 띠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詩)라는 것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언어의 압축을 통한 분명하고도 신선하며 감동적인 의미전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詩)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소설이나 수필 보다 시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떻든 코로나 시대에 무더운 여름을 지내는 가운데 우리는 세상의 시(詩)는 취미로 보고, 성경의 시(詩)나 시편 말씀은 사명감을 가지고 보고 읽고 암송함으로 영적으로 더 풍성해지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