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입니다. 친구와의 만남과 사귐이 귀하고 너무나 좋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남과 교제도 귀하고 즐거운 일일진대 하나님과 사람의 사귐은 영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곧 단순한 기쁨과 즐거움의 관계를 넘어 생명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요일 2:2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남과 교제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인생(롬 3:23, 롬 5:12, 롬 6:23)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오라”고 하시면서 부르고 계십니다. 타락한 사람은 자꾸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지만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하시면서 찾아오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도 오라고 하시고(호 6:1),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은혜를 약속하고 계십니다. 곧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 55:1-3)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생명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초대나 교제는 기쁨과 배움 등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초대나 교제는 영생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되셔서 직접 부르고 계신 주님의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은 참 안식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마 11:28-30, 요 1:39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에 교회와 먼저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영생의 자리로 함께 나아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한 생명이 돌이켜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를 통해 한 생명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잘 알아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직후부터 잃어버린 인생을 초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초대는(창 3:9) 영원한 천국을 보여주시면서까지 계속됩니다. 곧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라! 오라!”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외침이 없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눅 15:11-32, 사 65:1-3)을 기억하면서 함께 “오라”고 외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