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읽고 배웠던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프랑스어 En attendant Godot, 영어 Waiting for Godot)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무엇인가를 기다립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도’인데 고도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면 우편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작품을 읽어보면 고도를 기다리면서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중간에 다른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고도’가 어떤 사람을 뜻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작품의 핵심은 오지 않고 있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고도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도(Godot)가 영어의 신인 God 와 프랑스어 신인 Dieu의 합성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결국 ‘고도’는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무엘 베케트 역시 “고도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그는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여간 작가는 오지 않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면서 주인공들이 대화와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상황을 통해 인간의 허무함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대학시절에 읽었을 때에는 기다림의 의미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처럼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을 때 기다림의 의미가 보다 진지하게 느껴지고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기다림의 존재라고 생각해 볼 때 과연 많은 기다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생명의 출생을 기다리는 것,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졸업하기를 기다리는 것, 군에 간 아들이 제대하기를 기다리는 것, 멀리 생계를 위해 떠난 자녀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연인을 기다리는 것, 병으로 입원한 환자가 퇴원하기를 기다리는 것, 집을 짓기 시작하여 완공되기를 기다라는 것, 전장에 나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등…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정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범죄한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 65: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에 대해 누가복음 15장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기다림의 존재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초청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주님 나라에 이를 수 있도록 오늘도 기다리시면서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12월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있습니다.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시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고대하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작품을 투영해 보면서, 가장 확실한 것을 기다리며 기대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메시야 예수님을 날마다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