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는 여러 면에서 탁월한 교훈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이 책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권 키루스의 소년 시절, 제4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키루스는 어쩌면 너무 말이 많았다. 그 이유는 그가 받은 교육 때문이었다. 그는 교사로부터 그가 왜 그렇게 판결을 내렸는지 이유를 설명하라는 훈련을 받았다. 남이 내린 판결의 이유도 찾아보라는 훈련도 받았다.”
이 부분은 「키로파에디아」 전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끝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상대방의 판단을 보고 그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생각하고 훈련하는 교육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페르시아 교육 방법을 생각해 볼 때 주입식 교육의 무지막지가 얼마나 교육받는 자녀나 학생들에게 폐해를 주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등 인류의 스승이 택한 교육 방법 역시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고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탁월하신 예수님의 방법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상대의 무지와 신앙 없음을 깨닫고 하시고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생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키로파에디아」 제1권 4장에 계속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 그(키루스)는 원래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예리했기 때문에 남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면 즉시 답을 하였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그는 말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았다…키루스가 떠드는 말 속에서 건방진 느낌이 아니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사람들은 그의 수다를 피하거나 막기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끝까지 들었다. 하지만 키가 크고 세월이 흐르면서 청년의 시기가 되자 그는 말수가 줄었고 목소리의 톤도 낮아졌다.”
개인의 성장과 성숙은 늘 왜? 라는 질문과 호기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당연시 여기면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도 그러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물음을 가지고 대할 때 말씀에 대한 원만한 이해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지기 위해서는 교육하는 사람, 교육받는 사람, 교과서 등이 필요합니다. 이는 세상 교육이나 신앙 교육에 있어 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세계에 있어 교육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적으로 통달해야 하며, 교육받는 사람은 늘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끊임없는 호기심과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영원한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우선시하면서 말씀충만 가운데 모두 승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