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동진(和光同塵)

   2016년 친구 목사님들과 함께 공부했던 ⌜노자⌟(老子)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전에 공부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훝어 보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천천히 생각을 좀 깊이 하면서 보니까 ⌜노자⌟(老子) 사상의 깊이를 나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동양고전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볼 때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노자⌟(老子), 제 4장에서 ‘도’(道)에 대한 설명을 하는 가운데 “화기광, 동기진”(和其光, 同其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제 56장에도 나옵니다. 이 말의 뜻은 “빛남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 같은 세속과 함께 한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기 ‘화’(和)라는 글자는 화(禾, 벼화) + 구(口, 입구)로,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한솥밥을 먹는 식구를 가리키는 의미로, 누군가와 식사한다는 것은 화목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 글자를 생각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식사하신 장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든지 식사 초대를 하시면 거절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세리 마태의 식사 초대에도 응하셨고, 베다니 문둥이 바리새인 시몬의 식사초대에도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거절 하시지 않고 식사 초대에 다 가시니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욕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 7:34-35) 말씀하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주님, 인간이 되신 주님,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과 식사하신 것입니다, 너무나 황송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주님,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그 빛남을 부드럽게 하시고 티끌 같은 인생과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진’(塵)은 ‘티끌, 먼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광동진’(和光同塵)을 다시 번역해 보면 “빛남을 수그러뜨려(조화시켜) 옆에 있는 것(티끌)과 동화시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서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곧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위해 기도할 때 자신을 ‘티끌 같은 존재’로 이야기했습니다(창 18:27).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그야말로 티끌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를 귀하게 여기셔서 창세 전에 택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요 1장).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에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하되 영원히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 그 겸손하심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감사와 찬양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용

2024-01-21T09:29:14+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