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그 제자들이 “토론한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논어⌟(論語)는 인문고전 분야에 가장 상위층에 자리를 매김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세상 살아가는 이치, 교육,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술이”(述而)편에 보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네 가지를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학문, 실천, 성실, 신의였다는 것입니다. 원문에는 “자이사교, 문행충신”(子以四敎, 文行忠信) 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논어⌟에는 친구관계, 곧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옵니다. ⌜논어⌟의 첫 부분인 “학이”(學而)편 시작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원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우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여기에서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친구라는 존재는 언제나 만나도 즐겁고 반가운 것입니다. 물론 이익이나 사심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순수한 만남일 때 그러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부모자식 관계, 형제자매 관계, 선후배와 이웃관계, 친구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사회적 존재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한평생 살면서 모든 관계성이 다 필요하지만 꼭 있어야 할 관계가 친구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순수한 친구관계는 삶을 풍성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외로운 인생길에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친구 관계가 서로 원만한 가운데 살아가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홀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희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3-15).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친구로 삼아주시면서 이들을 위해, 나아가 오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모든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홀로 살아가며 어디에도 의지할데 없는 사람들을 향해 친구라고 하시면서 지금도 “오라”고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찬송 “위에 계신 나의 친구”(97장) 1절 가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이번 주간은 친구 되신 주님께서 우리 인생구원을 위해 십자가 지시기 전 겪으셨던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이에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시고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그 큰 사랑을 깊이 묵상함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