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활

   운전을 하다 보면 강변과 들녘에 개나리가 활짝 핀 것을 보게 됩니다. 언제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벌써 봄이 왔다는 것을 아주 실감하게 됩니다. 차디찬 겨울에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이 마치 죽은 듯 고요 가운데 있다가 봄과 함께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는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사 42:10-12).

그런데 만물이 약동하는 이 계절이 더욱 귀한 이유는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리고 우리 역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는 부활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증거하고 있고, 교회의 존재가 증거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존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땅의 삶을 다 살고 난 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성도의 죽음 직전에 하늘소망을 가지고 잠드는 성도의 모습을 통해서도 부활소망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부활의 아침에 두 부활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성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생명의 부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6-29).

주님께서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생명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이는 역사가 마무리되기 전 그 종말의 때에 일곱 번째 나팔 불 때 성도들이 모두 들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그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림 받아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계 11:15, 고전 15:51-52, 살전 4:13-18, 빌 3:20-21등). 이것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반면, 심판의 부활은 불신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는 천년왕국시대를 지나 무저갱에서 잠간 풀려 나온 마귀가 곡과 마곡을 미혹해 전쟁을 일으키다가 최후장소인 지옥(유황 불못, 둘째 사망, 영영히 타는 불)에 떨어지고 난 후 크고 흰 보좌 심판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계 20:11-15). 이때 창세 이후 하나님을 믿지 않던 모든 불신자들이 심판 받기 위해 부활합니다. 이를 심판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에 성도에게 있어 생명의 부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다가 가는 길은 둘 중 하나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심판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바로 “생명의 부활”입니다, 곧 마지막 나팔(일곱째 나팔) 불 때 모두 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늘 품고 부활의 아침에 생명의 부활을 소망하며 승리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용

2024-03-29T00:10:2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