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6.25전쟁 당시 “아이스크림 장군 밴 플리트”로 불린 미 8군 사령관이 있습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 먹기를 즐겼다고 합니다.백선엽 장군에 의하면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정말 한국을 사랑했던 미군 장성이었다고 합니다.
10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머물렀던 곳은 플로리다의 그의 목장이었는데, 그의 집무실 이름을 “한국의 방”이라고 지었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의 회고록을 집필한 폴 브레임에 따르면 밴 플리트는 언제나 한국에 대해 “나의 고향, 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 소녀를 깊이 후원했을 뿐 아니라 많은 한국의 전쟁 고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후원했다고 합니다.
전쟁에 임하고 지휘하는데 있어서 밴 플리트 장군은 맥아더와 같은 맥락을 지닌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6,25 전쟁 당시 그의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도 공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했는데, 아들이 군산 옥구 비행장을 떠나 북한으로 갔다가 실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곧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밴 플리트 장군은 절망의 일부 시간을 자신의 아내와 지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합니다. 아들이 실종된 그해 부활절에 미국의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세상에 없습니다.”
전쟁터에 자녀들을 내어 보낸 미국 부모들을 아들 잃은 아버지가 그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으로부터 온 많은 장교들과 병사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점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제 36년간의 식민통치 하에서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던 이 민족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일본이 연합군에 전적으로 항복함으로서 해방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몇 년 지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 공산주의의 물결이 한반도를 휩쓸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놓여있을 때 하나님께서 연이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이 땅이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역사가 흘러오면서 여러 위기 속에서도 지속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현재에까지 이르게 해 주셨습니다. 한국근현대사는 그야말로 에벤에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 배부른 나머지 하나님 앞에 심히 교만하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을 부르건만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시대건 영적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잠자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사실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지난날 이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느헤미야와 같은 심정으로, 에스라와 같은 마음으로, 사도 바울과 같은 간절한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면서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셨던 우리 주님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과 크신 사랑을 구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백성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백성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