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컬럼비아 대학 인류학 교수로 재직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년)의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이 있습니다.이 책은 단 한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녀가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을 연구하여 집필한 것입니다. 그녀는 일반 인류학자들이 사용하지 않은 일반적 자료들을 사용하여 일본을 연구하고 이해하여 집필했습니다. 곧 영화나 소설, 잡지, 전쟁 중 잡힌 포로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일본에 대해 이해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녀의 다른 저서들로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Race: Science and Politics)(1940) 등이 있습니다.

차가운 가을에 홀로 고귀하고 엄숙하며 깨끗하게 핀다는 의미에 있어 국화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황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반면 칼은 사무라이의 나라를 상징하는 일본의 대표적 상징물로 볼 수 있습니다. “국화와 칼”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순된 제목과도 같은데. 이를 통해 루스 베네딕트는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한 일본인들에게 속은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곧 그녀는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인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연구 과제─일본,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제4장 메이지유신,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제8장 오명을 씻는다, 제9장 인정의 세계, 제10장 덕의 딜레마, 제11장 자기 수양,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이야기하면서 문화는 인성의 확대라는 관점을 가지고 일본인을 연구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제3장의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한다.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과, 자유와 평등을 신뢰하는 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계층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는 인간 상호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서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가족, 국가, 종교, 경제생활 등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나아가 제4장의 ”메이지유신“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인의 생활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국화와 칼」을 관통하고 있는 문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전체를 읽어보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천황, 정치인, 군인, 서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격화되다시피 한 천황의 존재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데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에게 있어 천황이 몸소 내려 주신 ‘군인칙유’(軍人勅諭)와 ‘교육칙어’(敎育勅語)는 일본의 어떤 종교에서도 경전을 용인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성전(聖典)과 같은 것입니다.

「국화와 칼」을 통해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느끼게 된 감정은 무엇인가 서글프고 음울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이 섬기는 수많은 신(神)들이 있고, 신사(神社)도 많으며, 각자 개인적으로 섬기는 온갖 신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참 평안이나 내세에 대한 소망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일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생명의 복음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철학의 본고장인 아덴(아테네)에서 생명의 복음을 외쳤습니다(행 17:22-31).

우리 역시 숙명론에 붙잡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증거해야 합니다. 외치고 증거하되 일본, 중국, 태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북한, 인도네시아 등등 세계만방을 대상으로 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만용

2024-08-29T23:35:3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