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大器晩成)

「안씨가훈」(顔氏家訓)을 쓴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말기의 학자였던 안지추(顔之推, 531- 591)가 있습니다. 그가 쓴 이 책은 중국 역대 왕조와 명문가들의 훈육 및 교육지침서로 활용되어 왔으며, 지금도 이 책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전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제 8장 “학문”(勉學,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태도를 길러라) 부분의 “늦게 시작해 크게 이룬 만학도들” 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에 정신을 잘 집중하고 총기가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면 생각이 흩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반드시 일찌감치 교육을 시켜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그렇다고 만학이라도 결코 단념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된다. 공자께서 ‘쉰 살에야 「주역」(周易)을 완전히 터득하였는데 큰 허물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조조나 원유는 늙어가면서 점점 더 학구열이 뜨거워졌다…순자(荀子)는 쉰 살에 시작하여 제나라로 유학 가서 대학자가 되었다. 공손홍은 마흔 살 즈음에 겨우 「춘추」(春秋)를 읽고서 그 덕택에 마지막에는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안지추는 학문은 일찍 할수록 좋지만 늦게 한다고 해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부는 제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서 일생을 통해서 학문을 사랑한 삶도 아름다워 보인다. 이 단락은 이런 만학도들의 이야기이다. 큰 그릇은 늦게이루어지지만 모든 것을 담는 법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41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곧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 다음에 “대기성천하, 부지전별, 고필만성야.”(大器成天下, 不持全別, 故必晩成也.)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뜻은 “큰 그릇이 천하를 완성함에 완전한 분별을 고집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늦게 완성된다”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많이 들어왔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노자의 「도덕경」 제41장에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도 늦게 이루어져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모세와 아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년 살았고, 아론은 123년 살았는데, 그들이 애굽의 바로왕에게로 보냄 받은 때가 나이가 80세와 83세였을 때입니다. 성경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이었고 아론은 팔십 삼세이었더라”(출 7: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보았던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여선지자 안나 역시 나이가 많았습니다(눅 2장).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쓰임 받을 때에 그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쓰임받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짧더라고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그 사명을 감당하면 주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길게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하거나 충성스럽지 아니했을 때에는 책망받게 됩니다. 책망받는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성경의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자가 엘리에게 왔을 때 그의 나이는 구십 팔 세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던 때였습니다(삼상 4:14-15).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자가 자신은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삼상 4:17). 이에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는데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였으며, 그때는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비참한 죽음과 집안의 멸망은 그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앞에 범죄한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긴 까닭이었습니다(삼상 3:11-14).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는데, 늦게 완성된 큰 그릇은 제대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제대로 쓰임 받는다는 것은 각 분야마다 다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성도는 진정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 성숙함과 성화의 과정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감사의 삶을 통해 이 목표를 함께 경험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용

2024-11-03T18:05:54+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