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제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플라톤, 크세노폰, 알키비아데스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플라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가운데 크세노폰(Xenophon, B.C. 428~354년경)도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A.D. 1세기의 로마제국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 35?~100?)와 저술가요 철학자이며 역사학자였던 디온 크뤼소스토모스(A.D. 40년경~115년경) 등은 크세노폰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겨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키케로 역시 크세노폰의 문체를 칭찬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크세노폰의 많은 저작들 가운데 「소크라테스 회상록」이 있습니다. 이 저작은 그의 또 다른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작품명이 플라톤의 작품명과 이름이 같습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인간적 면모와 성격, 그리고 그의 의견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크세노폰을 위시한 몇몇 제자들 및 사람들과의 가상의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이런 면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의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우정’(友情)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또 언젠가 소크라테스가 우정에 관해 대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대화는 내 생각에 친구를 사귀고 친구를 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하기를, 자기는 많은 사람이 재산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은 훌륭하고 확실한 친구라고 말하면서도 대다수가 친구를 사귀는 일보다 다른 일에 더 신경쓰는 것을 보았다고 말을 꺼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 친구가 되려는 경향이 있네. 말하자면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동정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며, 그런 줄 알기에 서로에게 감사하네. 또한 사람들은 서로 적대시하는 경향도 있네. 말하자면 사람들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에 대해 의견이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고, 사이가 틀어지면 서로 갈라서네. 그리고 경쟁과 분노는 적대행위를 낳고, 탐욕은 적의를 낳으며, 시기는 정의를 낳지.하지만 우애는 이 모든 장애물을 통과해 진실로 훌륭한 사람들을 서로 맺어주지.”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훌륭한 친구를 붙잡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소크라테스와 크리스토불로스의 대화에 대해 크세노폰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키케로 역시 「우정에 관하여」라는 훌륭한 작품을 남겼지만, 소크라테스의 우정에 관한 생각 역시 깊이 되새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 성도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속담에도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 가운데 빠져 가장 어려울 때 친구가 되어 주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욥이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을 때 그의 친구들은 욥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삶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던 세리와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나아가 우리 인생을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참된 우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 삼아주셨기 때문에 오늘도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가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깊어 가는 이 가을, 참 우정(友情)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